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AI 에이전트 시대 (프로액티브, 인터넷 재편, 빅테크 지각변동)

by 한흠 2026. 9. 30.

AI 에이전트가 이메일을 스스로 읽고, 시키지도 않은 강연 슬라이드 초안을 만들어 가져왔습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목격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AI가 똑똑해졌다"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가 뿌리째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출처-pexels

프로액티브니스 —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인다

에이전트를 기존 챗봇과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고, 그냥 "더 똑똑한 챗GPT" 정도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건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핵심은 '프로액티브니스(Proactiveness)'에 있습니다. 여기서 프로액티브니스란 사용자가 명령하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해 먼저 행동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훌륭한 비서가 상사 일정을 미리 챙기는 것처럼, 에이전트도 제 상황을 읽고 제가 필요로 할 일을 먼저 제안해 줍니다.

실제로 인스팅트(Instinct)라는 에이전트를 연동해 놨더니, 제 이메일을 알아서 열람한 뒤 강연 주제와 추천 도서가 이미 정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80분 강연 슬라이드와 예상 Q&A를 제가 먼저 만들어 드릴까요?"라고 먼저 물어왔습니다. 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이메일 연동만 해뒀을 뿐인데, 스스로 맥락을 파악한 겁니다.

메타의 뮤즈(Meta Muse) 역시 비슷한 경험을 안겨줬습니다. 제가 답장을 보내지 않은 이메일을 체크해서 "9월 23일에 홍보 제작물 이미지 원본 요청이 왔는데 아직 안 보내셨습니다"라고 먼저 알려준 겁니다. 이건 제가 일부러 점검하라고 시키지 않았던 일입니다. 에이전트가 제 받은 편지함을 전반적으로 훑으면서 놓친 업무를 잡아낸 겁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겪고 나니, 에이전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단순한 실행 능력이 아니라 이 프로액티브니스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물론 너무 자주 끼어들면 거슬리고, 너무 조용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깊이로 먼저 움직여야 진짜 비서가 되는 것이고, 지금의 에이전트들은 그 균형을 빠르게 찾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약: 에이전트의 핵심 경쟁력은 명령 없이도 맥락을 파악해 먼저 행동하는 프로액티브니스에 있습니다.

 

인터넷 재편 — 목적형 사용은 에이전트가 삼킨다

저는 어릴 때 586 펜티엄 1 컴퓨터를 부모님께 졸라서 겨우 얻었습니다. 당시 100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으니 부모님이 큰맘을 먹으셨던 거죠. 그때 인터넷을 처음 연결했을 때의 그 감각, 방 안에서 세계와 연결된다는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또 한 번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들고 다닐 수 없던 인터넷이 손 위로 올라온 것이고, 그 결과 인터넷 사용량과 빅테크의 전성시대가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에이전트를 쓰면서 인터넷 사용이 사실 굉장히 어려운 행위였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티빙 구독 해지 하나를 하려고 해도 어느 메뉴에 있는지 한참 헤매야 합니다. 메리어트 본보이 호텔 예약을 할 때 포인트로 결제하는 게 유리한지, 현금이 유리한지 그때그때 달라서 비교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에이전트에게 시켰더니, 포인트 대 현금 비교표를 싹 뽑아주고 레이트 체크아웃이 잘 되는 호텔인지 후기까지 뒤져서 알려줬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각 호텔에 영어 문의 이메일까지 대신 발송했습니다.

이 경험 이후로 제가 생각하게 된 건 인터넷 사용의 두 가지 유형입니다.

  • 목적형 사용: 쇼핑, 여행 예약, 정보 검색, 구독 해지처럼 명확한 목표를 위해 인터넷을 여는 경우
  • 유희형 사용: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틱톡처럼 특별한 목적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경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목적형 사용의 경우 에이전트가 대체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릅니다. 영화 예약, 식당 예약, 호텔 비교, 이메일 발송까지 지금 이미 웬만한 건 다 됩니다. 반면 유희형 사용, 즉 그냥 유튜브를 틀어두거나 릴스를 보는 행위는 에이전트가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인간이 직접 느끼고 소비하는 경험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의 운명이 갈리고 있다는 게, 지금 인터넷 생태계 재편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요약: 목적이 있는 인터넷 사용은 에이전트로 대체되고, 유희형 사용은 오히려 인간 트래픽의 희소성이 높아집니다.

 

빅테크 지각변동 — 수혜자와 피해자가 갈린다

에이전트 시대가 오면 모든 빅테크가 동등하게 수혜를 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목적형 인터넷 사용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온 플랫폼들이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킹스닷컴, 익스피디아 같은 온라인 여행 예약 플랫폼(OTA, Online Travel Agency)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OTA란 항공권·호텔·패키지를 온라인에서 중개하며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사업 구조를 말합니다. 에이전트가 여행 예약을 직접 처리하게 되면, 사용자는 특정 플랫폼을 선택할 이유가 줄어듭니다.

구글의 검색 광고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검색창을 열었던 행동이, 이제는 에이전트에게 말로 묻는 행동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검색 광고 시장의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출처: Statista에 따르면 구글은 전 세계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데, 에이전트 인터페이스가 검색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이 광고 수익 기반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글을 완전히 불리한 위치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구글이 이 경쟁에서 가장 무서운 다크호스라고 생각합니다. 구글은 AI 연산에 필요한 TPU(텐서 처리 장치, Tensor Processing Unit)를 자체 설계하고,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소프트웨어까지 수직 계열화한 유일한 회사입니다. 여기서 수직 계열화란 원재료 생산부터 최종 서비스까지 한 회사가 통합 관리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AI 토큰 비용에서 가장 유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메타의 뮤즈는 현재 다운로드 속도 면에서 가장 가파른 출발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클럽하우스처럼 초반 열풍이 꺼진 사례도 있어서, 이 모멘텀이 지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봅니다. 아직 오픈AI, 앤스로픽, 구글의 개인형 에이전트가 정식 출시되지 않은 상황이라, 승자를 지금 단정하기에는 이릅니다. 출처: Gartner에서도 AI 에이전트를 2025년 이후 핵심 기술 트렌드로 꼽으며, 기업 전반의 비즈니스 모델 재편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요약: 목적형 인터넷의 중간 플랫폼은 위협받고, 수직 계열화된 구글과 에이전트 선점 경쟁이 빅테크 판도를 가를 변수입니다.

 

다시 새로운 인터넷 시대 — 에니악에서 에이전트까지

처음 에니악(ENIAC)이라는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무게가 약 27톤, 부피가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크기였습니다. 그게 지금은 손바닥 위의 스마트폰이 됐고, 이제는 그 스마트폰 안에서 에이전트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단순 암기와 퀴즈를 넘어, 바둑에서 인간을 밀어내고, 코딩을 대신하고, 이제는 인터넷 사용 자체를 대신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저는 이 흐름을 보면서 기술은 뒤로 가지 않는다는 말이 계속 떠오릅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PC 인터넷으로 되돌아가지 않은 것처럼, 에이전트를 경험한 뒤에 다시 직접 웹사이트를 뒤지는 방식으로 돌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영화 예약 앱을 켜고 좌석을 고르는 그 과정이 에이전트를 알고 난 후에는 갑자기 굉장히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LLM(대형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의 성능이 지금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에이전트가 컴퓨터 화면을 읽고 버튼을 누르는 능력인 컴퓨터 사용 능력(Computer Use)도 수개월 단위로 정확도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컴퓨터 사용 능력이란 AI가 실제 화면을 보고 마우스·키보드처럼 직접 조작하는 기능을 가리킵니다. 3개월, 6개월 뒤의 에이전트는 지금과 또 다를 겁니다. 이 속도를 생각하면, 지금 에이전트를 써본 적 없는 분들은 생각보다 빨리 따라잡아야 할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요약: 에니악에서 스마트폰, 그리고 에이전트까지 기술의 방향은 되돌아간 적 없으며, 인터넷 사용 방식의 다음 전환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 에이전트와 챗GPT는 뭐가 다른 건가요?

A. 챗GPT는 질문을 던지면 텍스트로 답을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에이전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제로 이메일을 열고, 웹사이트에 접속하고, 예약을 완료하는 등 행동 자체를 대신 수행합니다. 대화 상대와 실행 대리인의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에이전트는 어떤 게 있나요?

A. 현재 일반 사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는 메타 뮤즈, 인스팅트, xAI의 그록(Grok), 오픈클로 기반 에이전트 등이 있습니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은 아직 개인형 에이전트를 정식 출시하지 않은 상태여서, 앞으로 선택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Q. 에이전트가 내 이메일을 읽는 게 보안상 괜찮은 건가요?

A. 이 부분은 에이전트를 써보면서 저도 고민한 지점입니다. 편의성이 극대화되는 만큼 개인정보 접근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떤 권한을 어느 범위까지 허용할지 직접 설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Q. 에이전트 시대에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도 위협받나요?

A.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목적 없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는 유희형 플랫폼입니다. 에이전트가 대신 영상을 '감상'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이 직접 만들어내는 트래픽의 희소성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결론

에이전트를 쓰기 전까지 저는 인터넷 사용이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대신 해주는 걸 경험하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웹사이트 탐색'이라는 작업에 쏟고 있었는지 역으로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히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세계 전체의 작동 방식이 바뀐다는 신호라고 봅니다.

어느 에이전트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진 것 같습니다. 목적이 있는 인터넷 사용은 에이전트가 담당하고, 인간은 즐기고 창작하는 영역에 더 집중하게 되는 구조로 빠르게 이동 중입니다. 이 전환이 어느 속도로 오든, 미리 경험해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클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BAAT8G_jXM&t=20s